2026. 2. 25. 17:48

이 작가님의 전작인 요한티테와 황제와 여기사를 흥미롭게 (요한티테는 별로라고 생각했지만 곱씹을 수 있는 지점이 있었음) 봤기 때문에 작가 이름을 보고 구매했다. 솔직히 내 취향이 아닐 게 뻔했지만...
일단 내가 주는 평점은 별 두개다. 아주 나빴다고 보기엔 애매하지만 좋다고는 결코 말할 수 없을 것 같다... ㅋ
이유: 너무너무 지루하다. 후반부의 어느 지점부터는 n초에 한페이지씩 넘겼다. 도무지 중요한 내용이라고 와닿지 않아서... 일상물적인 성격이 별로인가? 하면 그건 아니다. 그냥 재미가 없었다.
내가 별점을 좀 더 준 건 이 작가님이 가끔 넣는 '사랑의 비린 맛'적인 지점이 그게 좋게 다가오든 나쁘게 다가오든 강렬하다는 점이 이 소설에서도 살아남았기 때문이다. 황제와 여기사는 순수 체급이 재밌었다고 생각한다... 에라프와 릴리에의 이야기는 감질맛이 나는 수준에 그쳤어도 매력이 있었다. 그 매력만으로 이야기를 끌고 가기엔 어려웠다고 생각하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궁금한 점이 하나도 없는 이야기는 아니었으니 다행인 셈이다.
제리코는 정말 귀엽다. 근데 내가 제리코를 귀여워한다는 점이 이야기의 매력을 담보하지는 못하는 것 같다. 순진하고 낙관적인 소녀의 일대기 자체는 괜찮았는데 남자들이 진짜 매력이 없다... 로망스도 사뒀지만 안읽었는데, 이 작가님의 작품을 세번째 접하는데 느껴지는 바가 같다면 고질적인 문제가 아닌가 싶다. 여주는 내 취향이든 아니든 고유한 매력을 간직하는데 남자는 진짜 아니다. 로젠 샌시 마그노 셋 모두 곤혹스러울 정도로 매력이 안 느껴졌다. 그나마 마그노? 그런데 이건 아마 마그노를 이루는 설정이 부분적으로 내 취향에 걸쳐져 있어서 오는 설정 자체에 대한 호지 캐릭터의 매력은 아니었던 것 같다. 남주 찾기라면 기본적으로 남주들 모두에 매력이 있어서 혼란스러워야 할 것 같은데 셋 다 매력이 없어서 미칠 것 같았다. 캐릭터가 남미새에 금사빠 같아서 정이 안 든다는 의견도 있던데 난 제리코보다는 남캐에게 설득력이 없어서 그 남캐를 좋아해야 하는 제리코에게 불똥이 튄 게 아닌가 싶다. 모든 캐릭터가 정해진 개성 안에서만 움직인다고 해야 할까. 로젠은 완벽^^섭남. 샌시는 ㅍㅍ괴짜천재. 마그노는 ㅍㅍ쿨데레얼음황자. 한국식 로판을 읽고 있는데 일본 라노벨을 읽는 기분도 받았다. 장르의 우열을 가리자는 게 아니라 캐릭터 작법의 면에서 주어진 롤을 절대 벗어나지 않는 그 감각이... 그래서 사람이라는 느낌이 안 들었다. 그리고 난 캐릭터가 사람답지 못한 것 같으면 좋아할 수 없다. 로젠이 진짜 심했고, 샌시가 그 다음. 마그노가 그나마. 그런데 생각해보면 로젠은 이 소설에서 제일 역할이 없고, 샌시는 후반으로 갈수록 남주로 기능해야 하는 면이 더 커지고, 그러니 진짜 아들이었던 마그노의 갈등과 고뇌가 상대적으로 더 드러난 게 아닌가 싶다. 그러니 그나마 마그노가 흥미로웠던 거겠지...
일반적으로 마탑주(비슷한거)는 남주가 되기 어렵고, 녹발은 더 어렵고, ㅍㅍ괴짜찐따 장발남은 더 어렵다. 하지만 샌시의 남주됨을 받아들이지 못한 건 그런 문제가 아니었다. 극적인 계기가 아니라 가랑비에 옷젖듯 사랑에 골인했다는 건 알겠는데 기본적으로 샌시라는 캐릭터의 괴짜됨이 너무 작위적이라고 해야할까... 너무 캐릭터스럽다고 할까... 이 캐릭터의 서사의 절반은 엄마고 절반은 호문클루스인데 이 두 가지 설정에서 매력을 느낀 사람이 몇이나 되는지 진짜로 궁금하다. 찐따천재남이 씩씩여주에게 감기는 것 자체는 수요가 있겠지만 난 이 장황한 마녀/그녀 타령 속에서 거의 고문당하는 기분이었어서... 숲요정 - 인외의 방식이고 인간사회의 규범과는 별리되어 있어서 안그래도 독자의 공감을 쉽게 끌기 어렵고 '그런 설정이구나' 로 받아들여야 하는데 그 두가지가 이 캐릭터를 이루고 있는 모든 것일 때 내 심정이란... 사다리를 타서 마지막에 남주를 정하셨다는데 4권부터인가 남주 낌새가 보인 걸로 봐선 진위 여부 확인이 필요한 것 같다. 사실 이러나 저러나 그가 남주여야만 하는 당위는 모르겠다... 그 당위가 이해가 가지 않으니 이 소설이 재미가 없었겠지...
하지만 내가 밀었던 남주는 처음부터 마그노는 아니었다. 나는 진짜로 드슬이가 남주일줄알았다...1권에서 남자의 모습을 취하길래... 근데 후기란 첫줄에 '남주가 드슬일줄 알았다'는 평이 속출했으니 그는 아니라는 뜻이었다...근데 진심으로 완결까지 보고도 드슬이가 남주가 아닌 이유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생사의 고락을 나누고 영혼의 공명을 울리고 마음 깊숙한 곳의 모든 아름답고 추한 감정까지 맞부딪힌 건 드슬이잖아. 그 누구의 앞에서도 추한 모습을 드러내지 않던 제리코가 음의 감정을 표출한 것도 드슬이 앞이다. 마지막에 드슬이와 검을 맞댄 것도 제리코라고. 물론 어떤 서사의 극점에 있는 존재가 반드시 로맨틱한 관계로 엮여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저 모든 극점 중 샌시가 가져간 게 아무것도 없다는 게 황당한 거다... 하나는 남주가 가져가야 하지 않나? 현실은 아닐 수도 있겠지. 하지만 이건 로맨스 소설이잖아? 당위가 설명되지 않으면 그건 구멍이다. 그리고 로맨스 소설에서 남주의 당위가 증명되지 않으면 읽는 사람은 끊임없이 불행해진다.
그리고 읽으면서 생각했는데 난 확실히 아카데미물을 안 좋아한다. 해포커를 그렇게 질기게 뛰어놓고 무슨 소리야 하겠지만 내가 해포커를 좋아하는 이유는 강제적으로 한곳에 섞인 서로 다른 사람끼리 충돌하다가 성인에 도달하고 다른 길을 간다는 커뮤의 보편적 성격이지 학원물 RP가 재밌어서가 아니다. 마지막에 맛있는 걸 먹기 위한 필수적인 고행에 가깝다. 그런데 아카데미물은 이 과정이 메인디쉬다. 그리고 끝은 기껏해야 졸업이지 성인기가 아니다. 즉 내가 즐기기 전에 끝나버리는 것이다... 내가 아카데미물을 좋아할지도 모른다고 착각한 건 이미 갈라선 상태에서 반추하는 돌아갈 수 없는 과거가 좋았던 거다. (아니면 파멸을 예고하든) 그리고 난 소년소녀가 비정한 세상으로부터 무언가를 강요받고 선택해야 하는 상황이 좋은데 내아아는 그런 건 없었다. 그냥 정직하게 학원물을 했다.
그리고 난 깨달음을 얻었다.
그딴 건 해포커 가서 충족해야 하는 욕구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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