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2. 26. 14:35

좋은 작품은 할 말이 짧아지고 나쁜 작품은 온갖 수사를 붙여서 길게 화내게 되는 이유는 대체 무엇일까?
이 이야기는 한 줄로 요약할 수 있을 만큼 미친 작품이었다...
나의 안사귐, 못사귐, 이미 끝난 사랑, 돌이킬 수 없는 사랑, 한때 사랑했지만 다른 길을 가는 사랑, 절대 돌이킬 수 없지만 절실했던 사랑콤을 거의 짓밟는 수준으로 쾅쾅 누른다... 미친 줄 알았다 이런 이야기를 20권 내내 쉬지 않고 한다. 대단한 사건이나 에피소드도 없고 그냥 펠루아 성에서 지내는 1년의 시간을 그릴 뿐이고 노도가 몰아치는 것도 아닌데 이 관계성 하나로 20권을 그린 것이다. 리스펙할만하다.
유일한 단점이 있다면 최후반부의 흐름이 다소 늘어진다는 부분. 말한 대로 큰 사건이 있는 게 아니라 오로지 관계로 이야기를 이끌기 때문에 어느 정도 질척한 관계가 정리가 되는 최후반부 - 그리고 쌍방 순애가 되기 때문에 당연히 긴장감이 떨어지는 - 구간에서 루즈하다는 감상을 받았다. 하지만 큰 문제는 되지 않는다. 거기 갈때까지 나에게 너무 많은 게 쏟아졌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분위기는 정적이다. 호흡이 엄청 조용한 만화라는 감상이다. 나는 그런 걸 좋아해서 좋았다...
좋았던 대사 몇가지 백업 (근데 너무 많고 캡쳐를 다 못함... 트위터 타래에 썼던 것만 몇개)
뭐가 더 갖고 싶으신 걸까?
부족한 거 하나 없이 다 갖고 태어나셨다던 우리 부인께선.
...아...사랑인가?
아님 나인가?
내 거 였는데.
그 말을 했던 나는 지금의 나와는 다른 마음이었고 나는 네게 너무 일찍 그런 말을 했던 걸 지금 후회해.
아시어스. 나는 아주 조금 후회하는 것이 있고 그것을 네게 들키고 싶지 않아.
다시 해. 나랑 연애해.
...저기...
나의 한시절이 가네.
꽃같던 한시절이 지나가네.
아시어스. 나는 왕궁에 서서도 너를 생각해.
그런데 네가, 펠루아 성에 사는 네가 나를 잊는 건 쉽지 않을 거야.
날마다 우리가 거닐던 정원.
사랑을 속삭이던 숲길.
오고 가며 한 수씩 주고받던 우리의 체스 판.
처음으로 입을 맞추던 태피스트리 뒤도.
그날의 예배당도.
나는 이 성의 여기저기에 있어, 아시어스.
거봐. 역시 공식적인게 최고지?
마른 들판을 달리던 바람 소리도
그 들판을 눈부시게 가득 채우던 금빛 춤사위도
그곳을 떠돌던 그 마음조자 그대로인데
그 곱던 그림자 하나만 사라져버렸네.
야속한 시간이 탐스러운 급빛 하나만 가져가버렸네.
흘러가는 건 강물만이 아니네요.
그렇지요.
후회는 안 해?
나 때문에 백작 부인이 됐잖아.
아무도 잘못한 사람이 없는데 일이 잘못되기도 하네.
나는 오르테즈와 연애도 하지 않았다.
오르테즈의 말에 의하면 그것은 사랑도 아니었다.
오고간 시선이 아무것도 아닌 건 아니었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무엇도 되지 않았다.
그 무엇도 되지 못한 마음은 이름도 갖지 못한 채 아직도 그 들판을 헤매고 있다.
휑한 바람 소리와 함께 흩어진 그 마음이 이제와 아시어스를 흔든다는 사실이 묘한 안도감을 준다.
지극히 그의 기사답지 못하게.
너는 아무것도 아니었어.
그 감정은 아무것도 아니었어.
우리 사이엔 아무것도 없었어.
그 말만큼 헤어진 연인에게 가혹한 말이 또 있을까?
비록 우리가 연인은 못 되었어도.
오지 않을 걸 알았다.
공작의 영애에겐 어울리지 않는 일탈이었겠지.
날씨라도 나빴다면 더 쉽게 납득했겟지.
설득이 안 되는 건 우습게도 나였다.
시선도 마음도 분명 닿았다고 생각한다.
확신은 있었다.
그럼에도 너는 나와 시작하고 싶지 않았던 거지.
너는 내게 아무말도 하지 않았지.
그리곤 아무 말도 없이 어느 날 모습을 감췄지. 그렇다고 무엇이 달라졌을까.
어쩌면 나는 그 들판에서 네게 고백했을지도 모르는데.
어쩌면 우리는 그 들판에서 입을 맞췄을지도 모르는데.
어쩌면 우리는 그 마른 들판에서 시작했을지도 모르는데.
모든 게 '어쩌면'에서 끝이 나버린 이야기에 무슨 힘이 있을까.
마음은 같은 곳에서 자라나기 시작했던 것 같은데 그 끝은 서로 달리 있었구나.
그래도 너를 펠루아에 데려올 정도의 남자였다는 거지. 녹스가. 네게는.
가끔 그 소리가 들린다. 낙엽을 밟던 소리.
조용히 흘러가던 물소리.
낮은 목소리 둘과
떨어지는 심장 소리 하나가.
마침표를 찍어 문장은 끝이 났어도
질척한 마음은 여전히 거기에 숨어 있다.
내가 너를 좋아하고 네가 나를 좋아하는 걸 알아도 어쩔 수 없는 부분이 남아 있다.
그 기억을 안고 평생을 살 만큼 아둔하진 않지만
이런 종지부도 나쁘지 않네.
세상에서 제일 잔인한 꿈은 가질 수 없는 꿈이 아니라
가질 뻔했던 꿈인 것 같아.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간 꿈.
내가 이토록 유치하다니.
내가 이토록 절박하다니.
네가 더 간절했잖아.
언제나 네가 더.
내가 당신을 좋아하는 거 아시잖아요.
방울방울 떨어지는 눈물이
예쁜 꽃망울에 맺히는 이슬처럼 보이네.
한때는 나를 흔드는 거대한 파문이었는데.
겹겹이 잘 쌓아올린 돌무더미 틈새로도 바람은 새어들고
꼼꼼히 걸어 닫은 덧창도 바람에 덜컹거리는데
하물며 빗장도 없는 마음이야...
...그러니까 아시어스 너는
너는 정말로 나를 사랑하지 않는구나.
정말로 나를 사랑하지 않아.
아마도 그때, 처음으로 느꼈던 것 같다.
내가 가지기엔 너무 먼 곳에 있는 사람이란 걸.
이미 알고 있었음에도 처음으로 납득했다.
다른 귀부인들처럼 적당히 불행했다면 난 아마 거리낌 없이 뺏었을 거야.
시작한 적이 없으니 끝도 없고
이름도 없어. 옛사랑도 아니고 짝사랑도 아니야.
부디 네가 주는 건 사랑이 아니라도
네가 받는 건 사랑이기를. 그리고 그것을 결코 들키지 말기를.
꿈을 꾸었다. 처음엔 어느 날의 기억인가 했지만
발걸음이 다가오고
오르테즈가 가볍게 웃고
그 곁에서 아시어스도 이그레인도 웃기에 꿈인지 알았다.
아시어스는 네가 꽤 맘에 드나 보던데
너도 그래?
길이 기네.
이 길이 이렇게 길었나.
이렇게 되고 보니 내가 참 무모했다.
나는 어쩌자고 펠루아 백작부인이 되겠다 했을까.
나는 네가 한번 보고 싶던 것 같아.
너는 눈부셨고 자유로웠고 나는 그런 것은 처음 보았지.
그래서 그냥 네가 한번 보고 싶었던 것 가아.
거기에 어떤 기대도 없었지만 약간의 치기는 있었을 거야.
그리고 약간의 심술도.
...아... 너무 심술 맞았어.
만약에 펠루아의 영주가 배불뚝이 아저씨였어도 그때도 넌 펠루아에 왔을까?
그 정도는 양해해주시고 나한테 그 정도는 대답해줄 수 있는 거 아닌가요?
아. 물론 없었겠지. 그러기엔 넌 너무 영리하니까.
난 이 여자를 조금은 안다고 생각한다. 필시 이 여자가 펠루아에 온 것은 나와의 시답잖은 연애담을 완성하기 위한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럼 무엇하러 펠루아에 왔냐고 묻기엔 내가 너무 겁쟁이다.
한국 순정만화는 정말 수작이 많네요. 제가 우물 안 개구리고 순정알못이라 모를 뿐 정말 좋은 게 많습니다...